여전한 삶은 여전히 여전하다.
요새는 영화를 많이 본다. 근 이주 동안 본 영화가 한 해 내내 본 영화보다 많다. 얼마 전에는 패터슨을 봤다. 언제 한번 봐야지. 언제 한번 봐야지. 벼르고 있었다. 벼르기만 하다가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말처럼 벼르기만 하는 영화가 되기 전에 다행히 내가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볼 수 있었다.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패터슨 같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기 보다는 그런 삶을 지향하는데 그와 동시에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러한 삶을 사는 데 일조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패터슨은 하는 일도, 함께 사는 아내도, 마주치는 이웃들까지 스마트폰은 커녕 전자기기 하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몰고 오후에 퇴근해 마빈을 산책 시키며 매일 가는 바에서 맥주 한 잔 사먹는 그의 반복적이고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는 이를 기반으로 시를 쓴다. 그의 삶은 그게 전부다. 하루 하루의 디테일은 달라지더라도 큰 틀에서는 여전하다. 사랑과 시. 패터슨의 일상은 이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내 기준에 그는 시인은 아니지만 그에게서 시를 떼어 놓고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은 그가 너무 부러웠다. 그런 규칙적이고 안정적이고 그렇게 일찍 끝나는 일이 있다는 것이.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패터슨이라는 인간의 삶 자체를 진심으로 아끼는 아내와 산다는 것이. 나이스하고 젠틀하며 잘못을 하더라도 다음날 바로 사과할 수 있는 이웃들과 마주친다는 것이. 부러웠다. 패터슨처럼 살고 싶다는 말에는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삶의 한 부분을 오려내어 그것을 내 일상으로 지정한 뒤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다. 사소한 것들은 하루하루 달라지더라도 큰 틀은 여전할 수 있는 그런 삶.
나는 이벤트를 반기면서도 이벤트를 힘들어하고 이벤트를 기다리면서도 이벤트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자리에 앉으며 같은 동네에 있는 같은 카페에 간다. 들었던 노래를 또 듣는다. 본 영상을 또 본다. 했던 생각을 또 한다. 만나는 사람을 계속 만난다. 혹은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를 쓴다. 모든 것을 일상처럼 만들려고 한다. 일상이 되면 할 수 있다. 일상이 되기 전에는 두렵다. 모든 생각이 그쪽으로 쏠린다. 나를 쥐고 흔드는 듯하다. 방법은 오직 일상에 집어넣기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내 일상에 포함시킨다. 사랑받는 일이 생기면 사랑받는 일을 일상에 넣는다. 미워하는 일도, 미움받는 일도 그렇다. 이벤트로 취급되는 일을 하느라 일상에 해당하는 일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면 마음이 쓰인다. 뭔가 놓친 기분이 든다. 나는 나의 삶이 여전하기를 바란다. 그래, 패터슨처럼.
삶 또한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기보다는 ‘죽고 싶지 않다’에 가깝다. 죽음은 너무 큰 이벤트이고 또 절대 일상에 넣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부활하지 않을 테니까. 죽으면 그대로 끝날 테니까. 시를 쓰는 일도 아주 익숙한 일상이다. 이제는 시를 안 쓰면 그 빈 시간을 어떻게 해결하지? 싶을 정도다. 커피 마시는 일도 그렇다. 그것도 늘 가는 곳, 늘 가는 동네에서. 나는 문래동에 간다. 굳이 한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서 커피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어떤 날에는 버스를 타기 위해 문래동에 가는 것도 같다. 버스를 타는 일 또한 일상 중 하나이다.
패터슨의 내일은 아마 여전할 것이다. 아내와 함께 잠들고 아내보다 먼저 눈을 뜰 것이며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출근할 것이다. 버스를 몰며 승객들을 태우고 오후가 되면 퇴근해 같은 각도로 기울어진 우체통을 세울 것이며, 아내가 차린 식사를 함께 먹고 강아지 마빈과 산책을 하다가 매일 가는 바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실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영감 삼아 시를 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똑같지 않을 것이며 매일매일이 다를 것이다. 승객이 달라질 것이며 승객이 나누는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 메뉴가 다를 것이고 저녁 식사 메뉴가 다를 것이다. 마빈과 산책하며 마주치는 이웃이 다를 것이다. 바 옆자리 손님이 다를 것이다. 사장과 나누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그렇게 써낸 시도 전날에 쓴 시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여전한 그의 삶은 여전하다. 나는 이 여전함을 원한다. 흔들리지 않는 하루. 그게 아니라면 흔들리는 것까지도 일상에 들어가는 그런 여전한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