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누

정확한 언어의 실패

영화 보는 행위는 또 그만두기로 했다. 만화 ‘룩백’의 실사 영화 버젼을 예매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대신 커피숍을 두 군데나 갔다. 낮에 친구와 만났으니까 세 군데다. 패스드에서는 에티오피아 워시드만 마신다. 급할 때는 에스프레소. 영하일 때는 따뜻하게 영상일 때는 차갑게. 사장님이 원두가 바뀌었는데 혹시 아셨냐고 물었다. 당연히 몰랐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니까. 커피 마시는 행위를 하는 거니까.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그것을 한다기보다는 그걸 하는 행위를 한다에 가까운 무언가를 한다. 말하자면 수행이다. 어쩌면 따라하기에 가깝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커피 마시는 행위를 한다. 일 대신 일하는 행위를 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보는 행위를 한다. 기준을 세우고 규칙을 만든다. 촘촘하게. 그렇게 만든 규칙을 엮어서 맥락을 만든다. 그물을 친다. 대화가 그물 안에 걸리면 원활히 이어나간다. 그물을 찢어버리면 나는 그때부터 어쩔 줄을 모른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어떤 면에선 당연하다. 뭔가 말이 있어야 그에 맞춰서 반응을 하니까. 아무 것도 없이 말하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최대한 촘촘히 말의 그물을 짠다. 아주 세세하게. 정말 사소한 것들도 나름의 정의를 내려 놓는다. 그럼 맘이 한결 편하다. 일상 루틴을 만든다. 벗어나지 않게.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게. 그물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만든다. 그럼 행위만으로도 진짜 그것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매일 커피숍에 가기만 해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때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면 된다.

저는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 마시는 행위를 하는 거에 가깝죠. 커피 잘 몰라요.

사람들은 웃는다.

진짠데.

끝없이 생각하고 상대를 살핀다. 제대로 반응해야 한다. 적절한 말을 던져야 한다. 감정을 읽어내야 한다.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있나? 내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가? 톤은 적절한가? 걸음은? 너무 빠르지 않나? 생각한다. 고친다. 그러고 나면 배가 고프다. 가끔은 비참한 마음도 드는데 이 비참함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멈추지 않고 지금 상황을, 행동을, 말을 해석한다. 이 해석에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이래서 이러하는 구나. 내가 새로운 지식 자체에 관심이 없는 까닭은 이미 끝없이 무언가를 해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구나. 이게 실제로 맞는지 아닌지는 다음 문제다. 나름의 결론만 내리면 된다. 그럼 이제 그에 맞춰 행동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온화하다고 한다. 또 누구는 어른 같다고 한다. 여유로워 보인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그거야 물론 그물 안에 들어온 거니까. 그물 안에 들어왔는데 화가 날 수가 없으니까. 화가 난건 실패한 거다. 화 같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훅 들어오면 혼란스럽다. 그래. 슬픈 마음 같은거. 그럼 손발이 저리다. 지금 이거 쓰면서도 내가 너무 다자이 오사무 소설에나 나오는 사람처럼 보일까 염려된다. 만일 그렇게 보면 어떻게 말해야 하지? 생각해놔야겠다. 그냥 글이니까 생각을 전개하다 보니까 좀 과장된 거죠. 진짜 이 정도는 아니죠. 나는 계속해서 명확한 정의를 원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그 말을 내게 했을 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 단어는 어떻게 쓰이는 건지. 그걸 알아야 당신의 세계를 알 수 있고 그에 맞춘 그물을 짜 반응할 수 있다. 모르는 세계를 마주치는 건 내게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건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나는 아직 이 무서움을 견디는 법은 모른다. 그물로 만들려 해도 자꾸만 찢어진다. 찢어지면 다시 기우고 또 다시 기우고. 온 몸으로 무서워하면서 앞으로. 앞으로.